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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에 대한 생각

日常茶飯事

by 사도요한 2014. 3. 1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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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나는 대체로 내 또래에 비해 항상 느렸다.

달리기나 운동신경에 대한 것도 포함되지만, 예를 들면 어릴 때 뒤집기 하는거나 걷는 거나 말하는거 그런거. 그런게 대체로 또래에 비해 늦게 시작했단다.


말. 유치원에 들어가던 여섯살 때는, 아마 누구도 정확한 이야기는 안해주지만 여러가지 정황을 따져 보면, 말이 늦었던 나는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런 가운데서 나를 유심히 봐주시던 사려깊은 유치원 선생님 한 분이 어머니께 이야기를 해서 유치원을 그만 두고 웅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학원이 무슨 종합학원 같은 거라서 한문학원, 주산학원, 미술학원 같은 것들이 같이 있었는데, 함께 시작했던 한문학원에서 나름 재능(?)을 인정받아 수업료를 조금 할인받고 이 학원 저 학원 다니기 시작했고, 학교에 다니면서 조기교육의 수혜를 조금이나마 입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달리기. 달리기는 초등학교 내내 반에서 꼴지였다. 타고 나길 숨만 쉬어도 살이 찌는 나는 안그래도 큰 키에 무거운 몸에 떨어지는 운동신경에, 당연히 달리기가 느릴 수 밖에 없었을 듯. 그래도 몸무게가 많이 나가니 힘으로 하는 건 나름 자신 있었던 것 같은데 몸 움직이는 게 좀 서툴렀던 것 같다. 운동 능력이 괜찮아진 시기는 고등학교쯤 올라가면서였던듯.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운동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좀 오래 걸리는 것 같다.


공부... 는 나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상당한 슬럼프 기간이 중간중간 있었다. 아마도 조기교육의 기운이 다 떨어져가는 시기에 다시 뭘 배우고 이해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는 사람들 기준에서는 좀 미스테리한 구석이 있다. 어쨌거나, 학교다닐 때 공부했던 것들은 그 당시에는 잘 이해를 못하고 그냥 외워서 시험보고 이런 게 많았는데 가끔씩 그 때 배웠던 것들이 이제서야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뜬금없이 작용-반작용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는지...


종합해보면, 나는 대게 늦게서야 트리거가 발생한다는 건데, 말하자면 지금 내가 머리로 생각하고,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을 내 주변의 어떤 사람들 또는 다수의 사람들은 적어도 수 년, 많게는 십여년 전에 알고 있었다는 건데 대체 나는 그 동안 그런 느낌과 생각 없이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참 신기하기만 하다. 경쟁사회에서 시기적으로 늦는다는 것은 그 만큼 뒤쳐지는 것을 의미하고, 현대사회는 개인에게 단 하나의 능력만을 요구하지 않는데 이런 나의 언밸런스함으로 지금까지 버텨주고 있다는 거는, 한편으로 내게 어떤 보이지 않는 울타리 같은 것이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라는 생각에 나를 이르게 한다. 사실, 이런 언밸런스한 발전을 극한으로 요구하는 상황에 나는 노출되는 일이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 나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살았는데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되기도 하니, 얼마나 루즈한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답도 된다. 어떤 관점에서는 운이 좋은 것이고, 어떤 관점에서는 신의 가호가 있었던 것이고, 또 어떤 관점에서는 냉면처럼 가는 인생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글쎄, 내가 느리게 살았다는 것을 이제서야 느리게 알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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