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기운에 대하여
NBA 2013-14 시즌이 점차 말미에 들어서고 있다. 플레이오프 시작과 함께 동서부 컨퍼런스 1라운드에서, 묘하게도 대부분의 팀들이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서부 1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동부 1위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각각 8위팀인 댈러스 매버릭스와 애틀랜타 호크스에게 업셋당할 위기에까지 놓였으며, 서부 2위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는 시즌 MVP에 빛나는 케빈 듀란트가 '폭토' 토니 알렌에게 꽁꽁 묶이며 역시 7위팀 멤피스에게 탈락 위기에까지 놓였었다. 한편, '마이애미 저격'만을 바라보며 한 시즌을 준비한듯한 부르클린 네츠는 루디 게이 트레이드 이후 반등에 성공한, 하지만 플레이오프 경험에서 상대가 안되던 토론토 랩터스를 상대로 어려운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이 와중에, 한켠에서는 '우주의 기운이 마이애미에게 있는 것 아니냐?'라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는데, 서부의 강팀 둘이 업셋당하고, 동부에서 타도 마이애미를 외치던 인디애나와 부르클린이 차분히 탈락하고 나면 그저 마이애미는 우승까지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컨퍼런스 파이널도 막바지로 가고있는 지금, 결국 이 이야기는 그냥 없던 얘기처럼 되어버렸다. 마이애미는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에서 부르클린 네츠를 만나고, 컨파에서 인디애나와 경기를 펼치고 있고, 서부에는 역시나 두 강팀 샌안토리오 스퍼스와 오클라호마시티 선더가 일전을 벌이고 있다. 결국, 내가 '마이애미 히트'라면, 가장 어려운 길을 거쳐야 우승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라고밖에.
그렇다고 '우주의 기운'이란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냐... 생각해보자. 우주의 기운이 없다면 '진인사 대천명'이란 표현은 의미 없다.
매 경기마다 터져나오는 오심의 지적, 홈콜에 대한 반감, 부상에 대한 우려, 아쉬운 턴오버, 이런 것들은 정말 한 끝 차이의 '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2대 1 속공 상황에서 자주 나오는 앨리웁 패스, 조금만 강해도 배드 패스가 되고 조금만 약해도 수비에게 걸릴 지 모른다. 그 패스의 강약을 조절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선수의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겠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신체 기관이 관여하고 있으며, 무거운 농구공에 비하면 보잘것 없겠지만 얼마나 복잡한 공기 유동을 뚫고 공이 날아가는 것이며, 그 공을 잡겠다고 하는 선수가 점프를 하기 위해 박차 오르는 순간 지면과 운동화가 일으키는 마찰과 수직 반력, 손에 공이 닿을 때 그것을 잡기 위한 손과 팔의 움직임, 눈동자의 움직임, 이 모든 것들이 적절하게 조절되어야 하나의 멋진 플레이가 나오는 것이며, 만약 이 중에 하나가 잘못되면, 만약 공을 받는 선수가 순간 눈을 깜빡이면 이 모든 상황은 그냥 샥틴어풀의 한장면이 되고 말 것이다. 이 모든 상황에서 거의 대부분은 반복적인 훈련을 하는 선수의 기량이 좌우하겠지만 아주 조그마한 확률로 '운'이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이런 것들이 모이면 거대한 '우주의 기운'이 된다.
'우주의 기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는 제일 생각나는게 역시나 2009년 한국시리즈이다. 마지막 경기만 보면 우주의 기운이 나지완에게 있었지만 시즌 전체를 놓고 생각해보면, 그 순간 떠오른 상황은, 기아와 SK 경기에서 연장전 마지막회에 최정이 등판해서 연속 밀어내기로 결승점을 내주고 SK가 졌던 상황이었다. 그 해는 무승부를 패로 간주하고 승률 계산을 한 해라서 거기에 대한 반감의 뜻으로 김성근 감독이 경기를 내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만약, 그 경기를 SK가 가져갔다면 2009년 우승팀은 분명히 SK였을 것이다. 기아의 한국시리즈 직행은 2위 SK와 단 반게임차였기 때문이고, 만약 SK가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면 9회 말 마운드에 오른 채병용의 체력저하 역시 덜했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나지완의 방망이는 무뎠을 테니까. 기아 입장에서야 그 해 말도 안되는 일들이 줄줄이 벌여졌지만 (김상현과 유동훈, 조뱀의 조갈량 모드, 김상훈, 뭐 등등등) 그 모든 우주의 기운을 모아도 기아는 우승을 못할 수 있었다. 만약 그 한 경기를 이기지 못했다면.
정말 우주의 기운이 모여 뭔가를 잘 되게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우승'을 목표로 한다면 그건 그냥, 조금 좋은 시작점 같은거지 그게 모든 걸 결정하지는 않는다. 결국 최종 목표를 달성케 하는 것은 목표에 대한 열망이고, 그 열망을 모아 최선을 다했을 때, 그 결정적인 상황에 어떤 우주의 기운이 작용하기를 바래야 하는 것일게다. 절대로, 포괄적인 우주의 기운이 모여 잘 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