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성서모임
인간의 교만과 하느님의 의미
사도요한
2011. 2. 13. 23:38
"너는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의 자리에, 바다 한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고 말한다.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에제 28:2)
성경 통독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힘든 시기에 나는 도달해 있다. 에제키엘서의 직설적이며 공격적인 어투는 지금까지 성경을 곱씹어 읽으며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답을 얻고자 하던 나에게 내 가슴에 대못질 하는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웬지 이런 무서운(?) 내용때문에 내 삶에도 일견 이런 면이 작용하는듯, 지금까지 지내오며 심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모든 성경이 그렇듯 앞뒤 문맥을 잘 따져가며 읽는게 상책이겠지만 위에 언급한 저 한 문장만큼은 홀로 빛나고 홀로 어둠으로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그건 어쩌면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던 한 사람이 신의 자리에 앉은 것처럼 행하고 있는 시대에 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시대는 점점 하느님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듯하다. 교회 안에서도 하느님의 자리는 저쪽에 멀리 자리한 듯하다. 모름지기 교회를 운영하려면 사람이 필요하고 그리고 돈이 필요하다. 일반 사기업이면 이 둘이면 모든 일을 도모하는데 족하다. 한편으로는 교회에서도 하느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사람을 움직이는 데 돈만한 것도 없어보인다. 적당히 잘 대해주면 잘 따라오겠지, 싶은 것들이 한둘이 아닌것 같다.
이것이, 인간의 교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결국 인간의 교만이라는 것은 신의 존재를 망각할 때 발생한다. 신의 존재를 망각한다는 것은 자신을 더없이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 때 발생하는 것이고 더없이 위대한 사람이 되는 길은 내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할 때 발생하는 것이고 내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는 전부를 세상과 동일시할 때 생기는 것이다. 결국 세상을 아우르는 것은 오로지 나일 뿐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느님의 크심을, 그리고 나의 작음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느님의 크심을 인정하는 것은 세상이 가진, 하느님이 원하시는 본연의 진리의 거대함을, 위대함을, 완전함을 아는 것이고 나의 작음을 인정하는 것은 아직 내가 거기 도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사람은 하루도 빠짐없이 하느님께 계속해서 다가가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